대청도 농여 해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였다. 마침 물이 빠져 풀등이 훤히 드러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붉게 물드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는데, 군인 두 명이 다가와 엄포를 놨다. “일몰 뒤에는 해변에서 나가셔야 합니다.” 농여 해변과 붙은 미아동 해변은 군사 보호구역이어서 해가 지면 출입할 수 없단다. 시간에 쫓겨서인지, 떨어지는 해가 더 아쉬웠다. 하여 일몰 직후 잠깐 펼쳐지는 이내의 장관을 놓치고 말았다.섬의 소소한 풍경도 기억에 생생하다. 소청도에 마을은 단 두 곳이었다. 150명 정도 사는데, 평균 연령이 74세다. 포구에 묶인 어선 대부분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배였다. 바다가 잔잔하면 스티로폼 배에 모터를 달고 나가 미역을 줍거나 홍합을 딴다고 했다. 대청도에선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대청 중·고등학교가 잊히지 않는다. 엘림여행사 장윤주 대표가 “학생 수가 50명인데 선생님은 20명”이라고 말해줬다.대청도가 홍어의 고장이란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분바위는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얬다. 이름은 바위지만, 하얀 바위가 해안을 따라 700m가량 이어진다. ‘월띠’란 이름은 달빛에서 나왔다. 바다에 나가면 달빛 받은 분바위가 섬에 하얀 띠를 두른 것처럼 보인단다. 산호 같은 생물이 쌓여 석회암을 이뤘고 10억 년의 시간을 거치며 대리암이 됐다. 일제 강점기 마구 파헤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분바위 옆에 박테리아 화석인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있다. 소청도에선 ‘굴딱지 돌’이라 한다는데, 정말 돌에서 굴딱지 흔적이 보였다. 돌 이전의 돌이라고 할까. 정말 10억 년 전 지구를 탐험하는 것 같았다.
분바위 아래는 온통 홍합 밭이었다. 노진호 지질공원해설사가 “물이 빠진 시간에만 드러나는 비경”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홍합은 생전 처음 봤다. 홍합은 1년에 6㎝ 정도씩 크는데, 8㎝가 안 되는 홍합은 못 잡는다고 한다. 섬에서 홍합은 홍어만큼 흔했다.가장 인상적인 곳은 농여 해변에 펼쳐진 풀등이었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모래톱을 풀등이라 하는데, 대청도 풀등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넓다고 한다. 일부러 물 빠진 때를 기다려 풀등으로 나갔다. 해안에서 모래톱이 장장 2㎞나 이어졌다. 바다 건너 백령도가 코앞에 보일 때까지 걸어 들어갔다. 지금 밟는 이 모래가 몇 시간 전엔 바다였다는 사실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이 넓은 세상이 전부 내 것인 양 바다 한가운데 모래밭에서 반나절을 활보했다. 생경하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바닷물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콸콸콸콸, 폭포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서 몰려왔다. 밀물은 소리로 먼저 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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