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피해생존자이자 활동가인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이후 ‘정신대’와 ‘위안부’의 용어 차이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은 ‘위안부’와 1944년 전 ‘여자근로정신대’를 비교하면서 용어의 혼동이 연구의 부족이나 시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 양 지적한다. 그러나 정신대는 1938년 총동원체제 이후 일상화된 용어였으며, 같은 시기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위안부’ 동원과 맞물려 결과적으로 ‘위안부’와 착종된 말이었다.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초대 대표 윤정옥은 17세 때인 1942년, 미혼여성을 ‘처녀공출’ 또는 ‘정신대 동원’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1945년 8월 해방이 된 뒤 전쟁터로 끌려간 여자애들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고 걱정됐다. 여러 차례 서울역에 나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징용자·징병자들을 붙들고 그 여자애들은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다. 어느 날 어느 남자가 툭 던졌다. “그 애들은 정신대가 아냐, 위안부야.
윤정옥은 정대협이 자신의 경험을 ‘정신대 피해’로 인식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신고하기 위해 찾아올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이 있었고, 언론은 일제히 ‘정신대로 끌려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 대해 보도했다. 기사 중에는 ‘정신대’와 ‘위안부’가 혼용되었다.2012년 제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역사부정을 통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두드러졌다. 우익들은 일본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여자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전장으로 연행돼’라는 기사를 쓴 기자가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분 못 하는 날조 기자라고 공격했다. 그해 말 은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동한 기사는 오보였다고 발표했다.
정신대는 일본어 ‘데이신타이’의 한자를 한글로 표기한 것이다. 이는 ‘혼신을 다해 나아가는 부대’라는 뜻의 일본군 전시 선전 용어다. 러일전쟁 중인 1905년 4월 13일 기사에서 일본군 장교를 ‘정신대 대장’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일본 언론은 학술정신대·무역정신대 등의 표현을 쓰면서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에 정신대라는 미사여구를 붙였다. 경남 양산의 김복동은 1941년 동네 구장이 ‘나라를 위해 데이신타이에 가야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중국 광둥의 위안소로 보내졌다. 어머니가 데이신타이가 뭐냐고 했을 때, 구장이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1945년 전남 승주의 이남님 또한 정신대로 뽑혔다는 구장의 말에 버마의 위안소로 보내졌다. 구장은 ‘정신대가 군인들의 밥과 빨래를 하거나 군복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며 ‘전쟁 덕분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1942년에 버마의 위안소로 동원된 이용녀는 싱가포르로 가는 배 안에서 ‘위안부’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위안부’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다.
일본섬 태평양에 주저앉을때 하늘나라에선 박수치고 콧노래 부르리
그래서 뭐? 비판을 할려면 제대로 하자. 민주당 비판할때는 정확하게 하더만
일제 만행의 피해자들이 스스로 편을 갈라 '피해 경쟁'을 벌이면... 그 꼴을 보고 누가 웃을까... 안타깝다.
어릴때 동네 어르신들이 정신대끌려가 일본군 성노리개시킨다고 기혼자는 안잡아간다고 조혼들 하셨다고 했음. 결국 정신대와위안부는 여성 인권유린이기에 분리하면 안된다는 뜻임.역사를 왜곡하는 자들.,매국노다 그게 매국이지 나라팔아야 매국이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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