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땅을 파도 아버지의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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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땅을 파도 아버지의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전쟁 도인촌 부역혐의 민간인학살 여주시 박만순 기자

"경자, 너 오늘도 사납금 안 갖고 왔냐?""...." 차경자는 매의 눈을 한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친구들의 눈초리와 마주칠까봐 창피하기도 했다.

엄마 등에는 동생 재경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 소달구지를 타고 가던 옆집 할아버지가"경자야. 여기 타거라"고 해, 모녀는 그나마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두른 김정희·차경자 모녀는 아침 8시경에 여주군 여주읍 여주향교 뒷동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와 있었다. 남성들은 삽과 괭이를 들고 땅을 팠고, 시신이 나오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가족인지 확인했다. 울음을 꾹 참았던 김정희는 집에 와서야 대성통곡을 했다. 남편 차용환은 한국전쟁 군·경 수복시에"잠시 피난 가 있으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서울로 피신했다. 그런데 고향의 처자식이 궁금해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가 여주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치안대가 그를 연행했고 이후 학살되었다. 1950년 10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미군부대 취업하려면 영어를 알아야 돼!""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경자는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마을 언니에게 물었다."내일 아침까지 알파벳을 전부 외워." 그날 밤 경자는 알파벳 26자를 외우느라 꼬박 밤을 새웠다. 다음날 여주군 능사면 미군부대의 미군은 그녀에게"알파벳을 써 보시오"라고 했다. 주저없이 술술 쓰니 합격이었다. 18세 차경자는 미군부대에서 식당 일과 청소를 하게 됐다.

장애인인 남편도 돌보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애쓴 것은 한국전쟁 때 억울하게 학살된 아버지와 행방불명된 오빠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힘든 이들을 돌보면 그들의 한을 풀 수 있다고 믿는다.1951년 할머니와 어머니를 따라 부산역에 내린 김규석은 모든 게 신기했다. 그때까지 김규석은 자신이 태어난 여주군 흥천면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기차를 탔는데 내리고 보니 부산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김영환은 유서를 작성했다. '내 동생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다 내 책임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두 형제 모두 불법적으로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다. 두 아들이 죽은 장소를 몰랐던 아버지 김석환과 어머니 최춘식은 마을 앞 읍뜰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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