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백래시, 한국사회 시계를 거꾸로 돌리다

정치적 의제 앞에서 무지는 순진무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공정’을 볼모로 앞세워 무지와 백래시가 결탁해 만들어낸 폭력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불평등, 차별, 혐오를 덮어버린다. ✍🏻 김정희원(애리조나 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2대선, 공정

2022-01-20 오전 1:17:00

정치적 의제 앞에서 무지는 순진무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공정’을 볼모로 앞세워 무지와 백래시 가 결탁해 만들어낸 폭력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불평등, 차별, 혐오를 덮어버린다. ✍🏻 김정희원(애리조나 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대선후보는 드뭅니다. 김정희원 교수(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가 공정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대안적 가치 및 실천 방식을 제안합니다. 이 연재 글은 격주로 총 5회 실릴 예정입니다.“조금 더 발전하면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앱을 깔면 어느 기업이 지금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시간 정보로 얻을 수 있을 때가… 아마 여기 1, 2학년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것 같아요.”얼마 전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시사IN News Magazine »

김정희원 교수님 기고글 2번째

노인 돌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노인 돌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돌봄노동자 코로나19 돌봄노동자기본법 요양보호사 이서영 기자

블링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세 막기 위한 외교 노력 계속할 것'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세를 막기 위해 끈질긴 외교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밝혔습니다.AP통신 등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현지시각 19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

대선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대선후보는 드뭅니다. 김정희원 교수(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가 공정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대안적 가치 및 실천 방식을 제안합니다. 이 연재 글은 격주로 총 5회 실릴 예정입니다. “조금 더 발전하면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앱을 깔면 어느 기업이 지금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시간 정보로 얻을 수 있을 때가… 아마 여기 1, 2학년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것 같아요.” 얼마 전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대학 신입생들이 졸업할 때쯤에는 구인구직 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 예측’ 덕분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되는 수준의 발언이어서 많은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 선대위는 당시 윤 후보가 지칭한 것은 ‘미래앱’이었다며 급히 수습에 나섰다. 물론 IT 기술과 관련한 윤 후보의 실언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차기 정부는 그냥 ‘디지털 정부’가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 정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공무원의 역할이 자기가 뭘 판단해서 의사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30대 장관이 한 명이 아니고 이런 시스템 관리를 가장 잘할 사람들이 행정부처를 맡지 않겠나.” 이어서 그는 “그럼 30대 장관이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장관이 ‘시스템 관리자’인가? 그리고 시스템 관리는 30대가 잘할까? 윤 후보가 말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토론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대선 후보들의 발언과 행보에 실망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혹은 해명을 원하며 답답해하고 있다. 사람들의 흔한 반응 중 하나는 “어떻게 저렇게 모를 수 있느냐”이다. 알면서도 잡아떼는 것인지, 아니면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의 ‘무지의 차이’를 비교하는 밈(meme)이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밈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아는데 모르는 척함”으로 설명되고, 윤석열 후보는 “진짜 모름”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모르는 것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진짜 해악은 무지와 백래시(backlash)가 결탁해 한국 사회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 무지란 무엇일까? 앎에 대한 학문을 에피스테몰로지(epistemology), 즉 인식론이라고 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에 대한 학문이다. 반대로 무지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학문도 있다. 애그노톨로지(agnotology)인데, 한국어로는 ‘무지학’이라고 옮겨도 좋을 듯하다. 무지에 대한 관심은 최근 크게 증가하여 관련 연구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판치는 시대에 ‘사람들은 왜 무지한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은 당연하다. 백신을 믿지 않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 개표 결과는 조작이고 트럼프가 다시 집권해야 한다고 믿는 미국인들, 그리고 기후위기는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정말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조작하고 거짓 이론을 생산·유포한다. 애그노톨로지라는 용어의 창시자인 로버트 프록터는 무지를 크게 세 종류로 구분했다. 첫째, 원초적 무지는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 즉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상황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의 무지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윤석열 후보가 실제로 디지털 기술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익히지 못했음을 보여주므로 원초적 무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무지는 사실 그 자체로 해롭다거나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모든 사람이 전문가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무지는 마치 해소해야 할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어서 오히려 그런 ‘도움의 손길’조차 그저 일방적인 개입일 수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알아야 하는 영역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얘기다. 둘째, 선택적 무지는 특정 영역에 대해 선택적으로 무지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뜻하는데, 다른 표현으로는 ‘수동적으로 형성되는 무지’라고도 한다. 우리는 어떤 자극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가? 반대로 우리는 어떤 신호를 무시하는가? 사람들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모른 척할 수 있고, 혹은 겉으로 드러난 의도가 없더라도 굳이 배우려 하지 않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지배 규범이나 ‘정상 이데올로기’ 바깥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예컨대, 약자들의 삶과 언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애써 그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양당의 대선후보 역시 사안에 따라 ‘민감’하거나 기득권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간주되는 영역은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두 후보의 태도다. 분명히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압도적 다수라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발표되었지만, 두 후보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뚜렷한 통계조차 외면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특정 영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선택적 무지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무지의 형태는 전략적 무지, 즉 ‘적극적으로 형성하는 무지’다. 사람들의 의심, 정보의 부족이나 불확실성, 또는 허위 정보를 이용해서 무지 혹은 거짓을 적극적으로 구성·조작·유지하는 것이다. 백신 음모론이 이와 같은 전략적 기획의 대표적인 사례다. 백신 음모론은 전 세계적으로 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모든 경우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전략적 무지’를 생산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뛰어든다. 국민의힘은 ‘N번방 방지법’을 막겠다면서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가족의 동영상도 검열의 대상이 된다면, 그런 나라가 어떻게 자유의 나라일 수 있겠냐”는 주장을 폈다. ‘고양이 사진을 게재할 수 없다’는 이 주장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은 외국 서비스는 모두 ‘N번방 방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법안의 실효성이 아예 없는 것처럼 주장했다. 또한 사적인 대화방까지 정보통신 기관이 직접 들여다보는 것처럼 허위 정보를 흘리며 “절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주는” 법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부정확한 정보를 유통하고 서로의 거짓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사람들의 무지를 굳혀가는 것이 바로 전략적 무지다. 선택적 무지와 전략적 무지는 백래시(backlash)가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공급되는 산소와 같다. 이 둘은 독자적으로 기능하기보다는 함께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많으며, 현실 부정과 백래시의 ‘논거’를 계속해서 조달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정치인들의 무지(그것이 어떤 종류의 무지이든)를 단순히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외면하고 은폐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또한 시대착오적이고 반동적인 공약을 내세우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약자와 소수자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특히 최근에는 ‘공정’의 이름으로 다양한 재분배 정책을 철회하려 하거나 여성에 대한 백래시를 정당화하는 흐름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반복적으로 소수자 배려 조치를 ‘불공정’과 연결시켜왔다. “1985년생 여성이 변호사가 되는 시대에 여성들이 무슨 차별을 받고 있느냐” 묻고, “국민의힘 최고위원 선거에서 여성 의원 3명이 ‘자력’으로 당선된 것을 보니 할당제는 필요없다”라고 말한다. 이 같은 단 하나의 사례로 대다수 여성 정치인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제21대 국회의원 중 여성 의원의 비율은 19%다. 국제의회연맹(IPU)이 지난해 11월 낸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은 회원국 중 121위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바로 위에 과테말라와 조지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 비율 19%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마찬가지로 여성 변호사의 수가 최근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 법무법인의 여성 변호사 비율은 겨우 24.5%일 뿐 아니라, 파트너 변호사 중 여성 비율은 9.6%, 심지어 임원 변호사 중 여성 비율은 5%에 불과하다(2020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 양성평등센터가 발표한 설문조사). 이런 현실에 대해 ‘무지’한 채로 젠더 정책을 세우는 것은 옳은 일일까? 무조건 무한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일까? 정책과 법안을 만드는 사람은 특별한 성공 사례가 아니라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답을 찾아야 한다.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자세한 정보를 충분히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볼 수 있겠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이들은 선택적 무지를 택한다. 그리고 반대 논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며 전략적 무지에 기여한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택적 무지, 그리고 누구든 공정하게 경쟁하면 성공할 수 있다며 능력주의 논리를 설파하는 전략적 무지는 한국 사회의 백래시에서 핵심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공정은 누구의 공정인가 심지어 윤석열 후보는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이를 “공정한 양성평등”이자 “공정한 법 집행”으로 지칭했다. 게다가 성폭력 무고죄는 ‘청년 공약’이다. 장예찬 청년특보는 무고죄 처벌 강화는 “양성평등 공약”으로서 “당사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사회의 공정을 추구한다”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억울하게 당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주장을 적극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 무고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또한 무고죄가 어떻게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자료가 쌓여 있다. 가해자들이 무고를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까 두려워 법적 절차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오랜 시간 쌓여온 데이터와 연구는 선택적으로 무시한 채, 별다른 근거도 없이 한층 강력한 무고죄가 ‘공정한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여기서 누구의 삶과 요청이 선택적으로 삭제되는가? 정치적 의제 앞에서 무지는 순진무구가 아니라 폭력이다. 약자와 소수자의 삶에 실제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정’을 볼모로 앞세워, 무지와 백래시가 결탁해 만들어낸 폭력은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불평등, 차별, 그리고 혐오를 덮어버리고 있다. 백래시는 우리가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백래시〉의 저자인 수전 팔루디가 오래전에 말했듯, 백래시가 조직적 운동이 아니라고 해서 파괴력이 더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발적으로 출몰하는 탓에 더 대항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요즘 우리가 목도하는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백래시는 ‘공정’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거대 양당의 두 대선후보는 공정과 정의를 주요 가치로 앞세우고 있다. 그들의 공정은 누구의 공정인가? 그들은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해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국가적 비전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특정 집단의 요구를 우선시하고 있는가? 보고 싶은 곳에만 시선을 두지 않는, 자신의 경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그래서 자신의 ‘무지’와 한계를 꾸준히 극복해나가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2022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Tag #2022대선 #공정 #백래시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