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 말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삶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우여곡절의 말들, 대단한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았어도 세상사 이치를 깨우치는 데 부족함 없는 회초리 같은 말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배시시 웃음이 나고 눈물이 그렁 맺히는 시큼 매콤한 말들. 그런 말들은 저 너머에 있을까. 가까운 곳에 있다, 옆에 있다. 1980~90년대 ‘뿌리 깊은 나무’에서 끈질기게 펴낸 〈민중자서전〉 시리즈는 삶을 우려낸 민초의 말이 어떻게 시로 들리고 소설로 읽히는지 보여준다. 예민한 귀를 가진 글쟁이라면 느낄 것이다. 이런 말에 화려한 꾸밈과 문장의 기교를 덧대는 건 부질없고 어리석다는 것을. 때론 그저 받아 적는 일이야말로 글쟁이의 대단한 역할이라는 것을. 문학만 그러할까.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사진이 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사진 앞에서 “어떻게 이 장면을 표현했느냐”는 물음은 어색하다. 사진사는 ‘그때, 그 자리에서’ 버튼을 눌렀을 뿐이니까.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 말’을 글쟁이들이 각자의 이름으로 옮겨 적고 세상에 드러낼 때 그 글의 주인은 누구일까. 빈번한 사례는 사진에 있다. ‘그저 찍기만 해도 압도적인 사진이 될 장면’을 복수의 사진쟁이들이 함께 보고 각자 찍고 세상에 드러낼 때 그 사진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피사체가 드러낸 ‘모습의 힘’에 주목한 사진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경주 남산의 소나무를 담은 유명하고 비슷한 사진들이 수두룩하다. 삼척 솔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비슷한 사진들을 두곤 치열한 소송전도 벌어졌다. 모습의 주인 앞에 서면 그런 사진의 우선권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먼저 찍은 사람일까, 먼저 발표한 사람일까, 더 유명한 사람일까, 더 나이 많은 사람일까. 아리송한 이 문제에 나는 답을 모른다. 2013년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밀양의 늙은 농부들이 힘겹게 싸울 때 산속에서 걱정 어린 모습으로 앉아 있는 김옥희 어머니를 찍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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