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도 못 가고…농성 노동자들 ‘길 위의 추석’

일진다이아몬드·현기차비정규직 등 45곳서 임금개선·직접고용 등 싸우느라 귀향도 못해

12.9.2019

“회사에서 1층 전기며 냉난방을 끊고, 화장실 휴지까지 다 없애놨다. 산소도 못 가고 가족도 못 보지만, 추석이라고 여기서 우리가 나가면 회사에선 다시 못 들어오도록 아예 문을 걸어 잠글 텐데 어떻게 가겠냐” 고향도 못 가고…농성 노동자들 ‘길 위의 추석’

일진다이아몬드·현기차비정규직 등 45곳서 임금개선·직접고용 등 싸우느라 귀향도 못해

일진다이아몬드·현기차비정규직 등 45곳서 임금개선·직접고용 등 싸우느라 귀향도 못해 11일 낮 일진다이아몬드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마포구 일진그룹 본사 앞에서 추석 합동차례에 쓰일 전을 부치고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한가위 귀향 행렬이 시작된 11일 오후 1시30분. 주택가도 시장도 아닌 서울 마포구 도화동 일진그룹 본사 1층 로비 앞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피어올랐다. 휴대용 가스버너 위 프라이팬에서 동그랑땡, 동태전, 호박전 같은 명절 음식이 지글지글 익어갔다. “명절이지만 집에 안 가고 이곳을 지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취지로 합동차례를 준비하고 있어요.” 장동준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일진다이아몬드지회 부지회장이 말했다. 이날은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지 78일째, 일진그룹 본사가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서울에 농성 천막을 친 지 35일째, 본사 로비에서 농성을 벌인 지 8일째 되는 날이다. 노조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상여금을 기본급·고정수당으로 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5년째 실질임금을 제자리에 묶어뒀다고 회사를 비판했다. 지난해 말 꾸려진 노조는 회사와 교섭을 시도해왔다. 하지만 회사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법에서도 금지한 내용을 단체협약에 넣자거나, 조합원들이 로비에서 나가야 교섭에 응하겠다는 조건을 거는 등 문제를 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합원 김현민(35)씨는 “회사에서 1층 전기며 냉난방을 끊고, 화장실 휴지까지 다 없애놨다. 산소도 못 가고 가족도 못 보지만, 추석이라고 여기서 우리가 나가면 회사에선 다시 못 들어오도록 아예 문을 걸어 잠글 텐데 어떻게 가겠냐”고 했다. 김씨와 동료 50여명은 추석에도 집이 있는 충북 음성군 쪽 대신, 본사 앞과 로비를 지키며 농성을 계속한다.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과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정문 앞 인도에 텐트를 설치하고 단식농성을 진행 중이다. 김 지회장은 11일로 45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강재구 기자 j9@hani.co.kr 최저임금 선상의 노동자들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길 위에서, 하늘 위에서 애타는 한가위를 보내고 있다. 이날로 45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과 8일째 단식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6명도 귀향을 포기했다. 김 지회장은 지난해 추석도 바로 이곳, 서울 중구 장교동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보냈다. 그는 “당시에도 18일 동안 다 같이 단식을 하고 추석을 보내면서 내년 명절은 가족들과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또 동료들과 이곳에 나오게 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회사와 정부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속상하다”고 했다. 김 지회장이 2년째 추석을 길 위에서 보내는 이유는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이다. ‘현대기아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에 해당되므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10여차례 거듭됐는데도 회사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회사에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고, 심지어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직접생산공정’에 한해서만 시정명령을 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몸무게가 20㎏쯤 빠지고, 오랜 단식으로 물과 효소조차 제대로 삼키기 힘든 지경까지 와 주변에서 단식 중단을 권유하고 있지만, 김 지회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파업이나 농성이 진행 중인 사업장은 지난달 말 현재 45곳이다. 저임금, 비정규직 차별, 노조 파괴 시도 등에 항의하며 ‘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달라’고 외치는 중이다. 11일엔 전국철도노동조합 코레일관광개발지부가 임금차별 폐지와 직접고용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다. 노조는 케이티엑스(KTX)와 에스알티(SRT) 승무원 등 600여명이 파업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도공)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만 직접고용하겠다는 도공의 방침에 맞서, 경북 김천의 본사 점거농성을 사흘째 계속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이 경찰의 해산 시도에 맞서 상의 탈의 시위를 할 만큼 불안과 긴장의 연속일 뿐, ‘풍요로운 한가위’는 남의 일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서울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삶의 벼랑 끝에서 농성과 단식으로 추석을 맞는 이들의 문제가 지금 당장 해결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은 추석인 13일 일진그룹 앞과 서울고용노동청 앞, 김용희씨가 복직을 요구하며 93일째 고공농성 중인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앞에서 차례로 합동차례를 지낸다. 박행란 꿀잠 활동가는 “명절에도 고향에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지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회사 쪽에 보여주려고 합동차례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조혜정 권지담 강재구 김윤주 기자 zesty@hani.co.kr 후원하기 응원해주세요, 더 깊고 알찬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진실을 알리고 평화를 지키는 데 소중히 쓰겠습니다. 응원합니다 더 많은 것을 읽으십시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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