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윤리위원회(이하 신문윤리위)가 조선닷컴·이데일리의 과징금 부과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이달 열리는 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선 ‘올해 과징금 제재는 그냥 넘어가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윤리위는 지난달 초 열린 회의에서 신문윤리실천요강 제13조 3항을 위반해 수차례 경고 제재를 받은 언론사 명단을 윤리위원에게 공지했다. 이 조항은 “폭력·음란·약물사용·도박 등을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하여 청소년과 어린이가 유해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운영규정에 따르면 신문윤리위는 13조 3항을 위반해 4회 이상 경고 제재를 받은 언론사에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해당되는 언론사는 조선닷컴(경고 5회)과 이데일리(경고 4회)다. 세계일보, 뉴스1, 헤럴드경제, 한경닷컴은 경고 3회를 받아 과징금 부과가 목전에 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그러나 신문윤리위는 과징금 부과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9월 회의를 마무리했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다수 윤리위원은 “올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을 냈다. 언론사에게 사전 공지 없이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자율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문윤리위가 창립 이래 과징금 결정을 한 번도 내린 적 없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윤리위가 조선닷컴, 이데일리에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은 100만 원이다.

윤리위원 A씨는 “대다수 위원이 ‘지금 당장 과징금을 물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었다”면서 “‘내년부터 진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뜻을 언론사가 충분히 인지하게 해야 반발도 적고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또 규정을 보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물론 과징금 징계를 해버리면 시원하겠지만, 중요한 건 징계가 아니라 언론계 문화를 바꾸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리위원 B씨는 “과징금 규정이 있는 건 맞지만 적용된 사례가 없었다”면서 “올해 회의가 3번밖에 남지 않았는데, 물리적인 한계와 여러 상황을 종합해봤을 때 내년부터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윤리위원 C씨는 “예고를 해서 언론사가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는가. 누적 징계가 과징금 부과 수준에 근접할 경우 알려주는 제도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리위원 D씨는 “언론 자유만큼이나 책임도 중요하다. 언론계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연장선에서 과징금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윤리위원 E씨 역시 “언론사가 자율규제에 승복하겠다고 하고 신문윤리위에 들어왔으면 과징금을 부과해도 되는 것 아닌가. 제재를 내리지 않는다면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윤리위 심의실 측은 “10월 회의에서도 논의를 할 것이다. 거기서 뭔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이어 “과징금 규정이 만들어진 지 오래됐지만 실제 적용된 적은 없다”면서도 “새삼스러울 건 없다. 지난해 제재를 강화하면서 예상됐던 부분”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이데일리 CI

하루 이틀 아닌 자율규제 실효성 논란…“제재 강화” 선언 어디로

신문윤리위는 1961년 출범한 언론 자율규제기구다. 신문사뿐 아니라 연합뉴스·뉴스1·뉴시스 등 통신사 기사도 심의한다. 신문윤리위는 언론사의 규정 위반 정도에 따라 ‘주의·경고·공개경고·정정·사과·관련자에 대한 윤리위원회의 경고’ 등의 제재를 내린다.

하지만 신문윤리위가 언론사에 내리는 제재는 대부분 가장 낮은 수위인 ‘주의’에 그친다. 일간스포츠는 지난 3월 유명 연예인의 신체노출 사진을 홈페이지에 게재해 ‘공개경고’ 제재를 받았는데, 이는 2007년 11월 문화일보 공개경고 제재 이후 14년 만이었다.

과징금 제재 규정은 2007년 만들어졌지만 ‘같은 조항을 3번 이상 위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적용되기 어렵게 설계됐다. 또한 1년 단위로 제재가 초기화되기 때문에 올해 12월이 지나면 조선닷컴·이데일리의 제재는 0건이 된다.

신문윤리위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안재승 한겨레 경영담당상무는 지난해 11월 한 토론회에서 “신문윤리위가 언론사에 내린 제재는 대부분 '주의'다. 주의는 불이익이 없으니 언론사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악순환이 이어진다”면서 “신문윤리위 내부에 ‘강도 높은 제재를 내리려 해도 언론사가 따르지 않으면 체면만 손상된다’는 무력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시 신문윤리위 윤리위원이었다.

표시영 강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역시 같은 토론회에서 “언론인이 자율규제기구에 참여하기 때문에 독립성과 실효성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윤리위·신문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기자협회·교원단체총연합회·국회·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윤리위원을 추천한다. 13명의 윤리위원 중 8명이 전·현직 언론인이다.

신문윤리위에는 매년 수억 원의 공적기금이 투입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신문윤리위에 투입된 보조금 총액은 77억3000만 원에 달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6억5000만 원이, 2019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7억5000만 원이 지원됐다.

자율규제 회의론 속 신문윤리위는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천명해왔다. 신문윤리위는 지난해 10월 제재 수위 강화 방침을 알리는 서한을 95개 언론사 발행인에게 발송했다. 선정적인 온라인 보도가 계속될 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신문윤리위는 같은 달 회의에서 “신문윤리강령에 저촉되는 일부 온라인 기사에 대해 위원회가 지속적으로 제재했음에도 상당수 언론사들이 개선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행위가 반복되는 것은 신문 전체 공신력을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신문협회가 발행한 신문협회보. 당시 신문협회장은 홍준호 조선일보·조선닷컴 발행인이다.
▲한국신문협회가 발행한 신문협회보. 당시 신문협회장은 홍준호 조선일보·조선닷컴 발행인이다.

신문협회는 지난 2월 발행한 신문협회보에서 “(신문윤리위) 제재가 누적될 경우 신문사의 대내외적 신뢰가 실추될 뿐만 아니라 경영에도 타격을 입게 된다”면서 “기존에는 대부분의 심의 결과가 ‘주의’에 그쳤으나, 최근 들어 신문윤리위가 공개 경고에 준하는 경고 조치와 더불어 재발 방지를 당부하는 서한을 발행인에게 직접 보내는 등 규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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