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조바심, 검찰의 위기감 충돌한 ‘검수완박’

이효상 기자
2019년 7월25일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7월25일 신임 검찰총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 출범을 한 달 앞두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배경은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의 등장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검찰 직할 및 검찰의 자의적 수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급발진했고, ‘존재의 위기’를 느낀 검찰이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대립이 격화하는 중이다. 근저에는 검찰에 대한 고질적 불신이 있다. 신구권력 간 투쟁이 민주당과 검찰의 대리전으로 전이되고, 그것이 다시 검찰 내 신구권력간 다툼과 맞물리는 흐름도 보인다. 그 와중에 정작 지금 당장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과 진지한 논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의 존재가 검수완박 추진 배경임을 숨기지 않는다. 민주당 소속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직을 마지막으로 해서 대통령 후보가 됐고, 당선됐다”며 “(중견 검사 이상은)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관계”라고 했다.

윤 당선인 측의 적폐청산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냐’는 질문에 “해야죠, 돼야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측근 검사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중용할 뜻을 시사했다.

‘윤핵관’인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는 10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실권자들, 각종 비리 의혹을 받는 이재명 전 대선 후보와 부인(김혜경씨)의 범죄 행위를 막기위해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문 대통령과 이 지사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발언이다. 서울동부지검의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민주당의 우려에 현실적 근거를 제공했다.

검찰은 ‘검수완박’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이 검찰 권한의 양적 축소에 관한 문제였다면 ‘검수완박’은 검찰 문을 닫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검찰 수사기능이 폐지된다면 검찰총장인 저로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김오수 검찰총장의 11일 발언이 지금 검찰의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은 ‘친윤석열’과 ‘친정부’로 쪼개져 싸웠다. 그러나 ‘검수완박’을 두고는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주요 간부들까지 모든 검사들이 한 목소리로 반대한다. 검찰 내부에선 친정부 성향인 검찰 간부의 ‘원죄’를 묻는 듯한 발언도 나온다. ‘검수완박’을 둘러싼 갈등이 검찰 내부의 인적청산 흐름과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

정권이양기에 고위 검사들이 ‘검수완박’ 논쟁을 검찰 구성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호기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검찰의 생리”라고 했다. 검찰 내부 역학관계도 ‘검수완박 결사 저지’에 힘을 싣도록 조성돼 있다는 뜻이다.

법조 전문가 다수는 ‘검수완박’의 즉각적인 추진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그 중에는 장기적으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지금은 앞선 검찰개혁의 성과물인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수사처를 현실에 안착시킬 때라는 것이다. 더구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관 1인당 담당 사건 수가 늘었고, 사건 처리는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찰 업무 가중으로 민원인의 고소·고발 반려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검찰 수사권 폐지 시 6대 범죄 수사에 대한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아랑곳 없이 법안 처리를 강행할 태세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논의는 검찰의 공정성에 대한 깊은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근택 민주당 전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와 윤 당선인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비교하며 “결국 수사라는 건 형평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이 자의적으로 수사할 가능성을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이다. 현 정부와 가까운 검찰 지휘부가 3년간 수사를 방치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사례처럼 검찰의 권력 수사 공정성에 대한 우려는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강대강 충돌을 피하려면 여야가 검찰개혁의 근본 방향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되 윤 당선인은 수사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일단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은 “나는 검사를 그만둔지 오래 된 사람”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지금이야말로 윤 당선인이 문제 해결에 나설 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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