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의용군, 우크라에 도움될까

주영재 기자
벨라루스 국적의 의용군들이 3월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벨라루스 의용군 기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수백명의 벨라루스 시민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AP연합뉴스

벨라루스 국적의 의용군들이 3월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벨라루스 의용군 기지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수백명의 벨라루스 시민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A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의용군 참여를 호소한 후 세계 각지에서 의용군에 참여하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유럽 국가 출신이지만 최근에는 군대 관련 유튜브 콘텐츠로 유명한 이근씨도 참전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은 지난 3월 6일 이렇게 모인 의용군의 규모가 2만명 정도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의용군은 스페인 내전(1936~1939) 당시의 국제 의용군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파시즘 성향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합법 선거로 당선된 사회주의 세력과 내전을 벌이자 세계 각지의 노동자, 지식인들이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등 유명 작가들도 참전해 스페인 공화파·아나키스트·좌파의 편에서 싸웠다.

■의용군, 전투에선 오히려 걸림돌

영국의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에 따르면 당시 ‘국제여단’으로 명명된 국제 의용군은 “파시즘을 국제적 위협으로 봤고, 국제여단이 거기에 맞서 싸우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일부는 전쟁에서 맛볼 수 있는 짜릿한 흥분을 노리고 온 경우도 있었지만 병사 대부분의 참여동기가 이타적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참전을 ‘인증’하는 모습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 의용군도 러시아의 침략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지키겠다는 대의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처럼 이념 대결로 보긴 어렵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스페인 내전 땐 파시즘 대 반파시즘의 이념 대결 양상을 보였다면 지금은 평화와 문명을 존중한다는 ‘가치의 연대’로 소셜미디어를 통한 글로벌 시민 사회의 자발적 참여가 특징”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의용군을 ‘영토수호 국제부대’로 명명하고 공식 부대에 배치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국제부대가 물리력에서 열세에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고, 국제 여론전과 젤렌스키 지휘부의 리더십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전쟁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김영준 국방대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는 “국제협조가 아름답게 이뤄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돕는다는 자부심만 채우는 소위 허세꾼들이 몰려올 수 있다”면서 “한 번도 마주보고 일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휘구조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싸운다면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투 현장에서 혼란과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두진호 연구원은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잘 모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의용군을 어떻게 전장에 투입해 임무를 부여하고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자칫 예상할 수 없는 우발적 충돌이 확대될 수 있고, 우크라이나군과 협조하지 않은 작전을 할 경우 오인사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일부 백인 우월주의자·네오나치 세력도 의용군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침공 이유로 제시하는 러시아의 궤변을 지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 사는 러시아인들을 인종차별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러시아가 의용군 모집에 대응해 정규군 외에 제도권·비제도권의 무력 세력을 활용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체첸 내무군의 일부 세력이 우크라이나로 들어갔다. 최근에는 러시아 정부가 시리아에서 내전으로 시가전 경험이 풍부한 전투원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두진호 연구원은 “체첸 내무군이나 러시아 해외정보국 산하의 특수작전부대 같은 특수군이 더 들어갈 것 같다”면서 “중앙아시아 국적자들이 러시아군에서 복무할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해 이들을 고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의용군 참여를 막을 수 없다면, 후방에서 전쟁을 지원하는 역할에 국한해야지, 직접 전투에 참여시킬 경우 서방이 관여하고 있다는 러시아 공세를 강화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소셜미디어 이용한 심리전 격화

의용군의 군사적 실효성 외에 법적 문제가 제기된다. 국내에서는 여행금지구역을 방문해 여권법 위반이 될 수 있고, 참전할 경우 사전죄(私戰罪)로 처벌받을 수 있다. 사전죄는 정부 선전포고나 군의 전투명령이 없음에도 개인이 마음대로 외국에 대해 전투행위를 할 때 성립한다. 병역의무자가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허가 없이 출국할 경우 병역법에도 저촉된다.

국제법적으로는 전쟁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오는 외국 용병들은 국제법상 전투원이 아니며, 체포 시 최소한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 제3협약에 따르면 의용대가 전투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몇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부하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자에 의하여 지휘될 것, 멀리서 인식할 수 있는 고정된 식별표지를 가질 것, 공공연하게 무기를 휴대할 것, 전쟁에 관한 법규 및 관행에 따라 작전할 것’과 같은 것들이다.

김영준 교수는 “정식 부대로 편성돼 훈련을 받고 지휘체계를 갖춘다면 모를까 (개별적으로 싸운다면) 러시아군이 날 죽이려 할 때 쏘는 자위권 이상의 권리를 보장받긴 어렵다”면서 “자위권이 아닌 상황에서 죽이면 살인이 되고, 이에 따른 (러시아에서의) 형사처벌을 막기 위해 정부가 출국을 금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의용군 일부가 포로로 잡히면 이들을 빼내오는 데 많은 국력이 소모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의용군 참여보다는 국경지대에 모인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다. 안두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2차대전 이후 최대 규모가 될 수 있다는 예측이 있다”면서 “의용군 참여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 내 반전 여론을 높이고,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심리전이 강하게 전개되는 것도 이번 전쟁의 특징이다. 군사력에서 밀리는 우크라이나로선 심리전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에서 사진과 영상으로 파괴된 러시아군 장비를 보여주거나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을 노출해 자국민의 사기를 높이는 한편 러시아의 반전 여론을 자극하려는 목적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잘못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처럼 동원되고 있다. 일례로 우크라이나의 한 영웅적 조종사가 개전 후 30시간 동안 6대의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했다는 일명 ‘키이우의 영웅’ 영상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공유됐는데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컴퓨터 렌더링 영상으로 확인됐다. 김영준 교수는 “소셜미디어로 전쟁을 실시간 보는 시대가 됐다”면서 “정당한 혹은 부당한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 진실과 가짜가 뒤섞인 정보가 양진영에서 늘어날수록 한쪽을 악마로 보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전전은 정당하지 않은 전쟁을 수행하는 쪽에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안두환 교수는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라는 생각이 한번 들기 시작한 상황에서 전투마저 패배하면 사기가 갈수록 더 안 좋아진다”면서 “베트남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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