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인터뷰를 하다 말고 눈들이 반짝였다. 촬영된 사진을 보다 엠넷의 인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가 떠오른다는 이야기가 오가던 차였다. “스노파 어때? 스트릿 노조 파이터.” 조선희씨(29·앞)가 운을 뗐다. 노조를 만들었거나, 만들고 싶어 하는 다른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모으자는 아이디어였다. 고은지씨(31·뒤)가 “괜찮은데?” 하며 맞받았다. 노조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가볍고 재밌게 바꿀 수 있을까가 최근 이들의 고민이었다. “모집 포스터도 만들자” “필리버스터도 하자”라며 진지함과 웃음기 섞인 대화가 한동안 이어졌다. “이렇게 동료들과 잘 맞으니까 제가 못 떠난 거예요.” 퇴사를 한 200번 정도 생각했다던 고은지씨가 말했다. 현재 언론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노조 위원장이다.

민언련 노조가 지난해 10월29일 출범했다. 3년 차 활동가인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건, 지난해 5월쯤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에 야근과 과로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 선택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저연차 활동가들은 빠르게 소진되어갔다. 희생과 불이익, 때로 갑질까지 ‘활동가다움’이란 말로 면제받는다고 느꼈다. 일부 동료는 퇴사를 선택했다. 노조 부위원장인 조선희씨는 “많은 시민단체에는 허리 역할이 없어요. 계속 ‘아래’만 교체되거든요”라고 말했다.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고 싶었다. 밖에서 민주주의와 언론개혁을 외치는 만큼, 안에서도 일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보고도 안 되면 그때 나가자(고은지).”

활동가는 노동자다. 시민단체도 회사다. 인사권과 경영권을 가졌다면 ‘사측’이다. 밖에서 당연한 사실들이 정작 안에서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며 불편해하는 기색도 있었다. 우려와 달리 상근 활동가들 모두 노조를 환영했다. 12월 첫 예비교섭을 앞두고 돌린 설문조사에서 ‘사측에 무엇을 요구하고 싶냐’는 질문에 노조원들의 답변은 의외였다. ‘투명하고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 조선희씨는 개인의 희생이 용인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운동이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 후 퇴사한 동료들, 선배 활동가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더 시끄럽게 굴었으면 좋겠다”라는 응원은 그중에서도 큰 힘이 되었다. 노조가 생긴 후로 달라진 점이 뭐냐는 질문에 고은지씨는 잠시 생각하다 “그래도 대표단과 소통하는 게 전보다 용이해졌다”라고 말했다. 첫발을 뗀 민언련 노조는 3월 첫 단체교섭을 앞두고 있다. 예상치 못한 변화는 바깥에도 있었다. 노조 출범 후 몇몇 시민단체에서 알음알음 연락이 오고 있다. ‘위에 소문나지 않게 해달라’는 공통적인 요구를 하면서. “노조 하는 활동가가 더 세상에 드러나고 연결되면 좋겠어요.” 조선희씨가 ‘스트릿 노조 파이터’를 떠올리며 눈을 반짝인 이유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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