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찌오.”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러고는 이름 뒤에 성을 붙여 다시 한번 말한다. “마우리찌오… 구찌.” 먼저 손 내민 건 그였으나 이제 그 손을 잡고 놔주지 않는 건 상대방이다. 눈이 커지고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그를 우러러보는 것이다. 매일매일 그런 시선과 마주하며 살았다. 그날 밤, 그 파티에서도 역시.

그곳에서 처음 만난 스물두 살 동갑내기 여성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딱 하나 다른 게 있다면, 한번 잡은 구찌의 손을 평생 놓지 않겠다는 결심이 남다른 사람이었다는 거. “돈밖에 모르는 여자”라며 아버지 로돌포 구찌(제러미 아이언스)가 말려도, “나밖에 모르는 여자”라며 아들이 청혼하게 만들었다. 파트리치아 레지아니가 ‘파트리치아 구찌’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회사 경영엔 별 관심 없던 남편을 닦달하여 회사 경영 말고는 관심이 없게 만든 것도 파트리치아, 아버지 대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삼촌 알도 구찌(알 파치노)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도 파트리치아, 그렇게 경쟁자를 제거한 뒤 회사 경영권을 마우리찌오(애덤 드라이버) 혼자 차지하게 만든 것도 역시 파트리치아였다. 모든 게 그녀 뜻대로 되어갔다. 남편의 사랑이 식어버리기 전까지는.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전통적인 시나리오 작법의 3막 구성을 따른다. 파트리치아가 구찌 가문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 1막, 남편을 앞세워 구찌 가문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2막, 파트리치아 구찌에서 다시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로 추락하는 서사가 3막. 이 흔한 3막 구성으로 또 한 번 흔치 않은 이야기를 풀어낸 사람. 리들리 스콧이다.

서로를 닮은 두 편의 영화

이탈리아 석유 재벌 J. 폴 게티의 손자가 유괴된 1973년의 실제 사건을 영화 〈올 더 머니〉(2017)로 만든 그가, 역시 이탈리아 패션 재벌 구찌 가문이 겪은 1995년의 실제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했다. 인간이 숨기고 있던 욕망의 괴물이 튀어나와 폭주하는, ‘자본주의 에이리언 시리즈’라 불러도 좋을 두 편의 영화는 여러모로 서로를 닮았다. 무엇보다, 두 편 모두 짧지 않은 상영시간이 언제 다 흘렀나 싶게 지루할 틈 없는 작품이라는 게 가장 닮았다.

인생의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회전문이었을 때, 빙빙 돌아 다시 원래 자리로 내쳐진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파트리치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영화에 나오는 대사는 아니지만, 실제 인물 파트리치아가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힌트가 될지 모른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행복해하느니 롤스로이스를 타고 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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