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역패스, 다른 결정…왜 재판부마다 엇갈린 판단 내렸나

김희진 기자
법원이 서울 내의 3천㎡ 이상 백화점·마트·상점에 대해 방역패스 효력 정지를 결정한 가운데 16일 서울의 한 백화점 입구에서 시민들이 QR코드 체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서울 내의 3천㎡ 이상 백화점·마트·상점에 대해 방역패스 효력 정지를 결정한 가운데 16일 서울의 한 백화점 입구에서 시민들이 QR코드 체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 조치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법원이 제각각 판결을 내놓고 있다. 방역패스로 인한 기본권 침해 정도와 방역패스의 공익성 충족 여부 등 기준을 두고 재판부마다 달리 판단한 결과이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소송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이런 양상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같은 날 다른 결정…“과도한 침해” vs “대체 가능”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한원교)는 지난 14일 조두형 영남대 의대교수 등 1023명이 서울시장을 상대로 낸 방역패스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서울시 내 3000㎡ 이상 상점·마트·백화점에 적용한 방역패스 효력은 정지됐다.

행정4부는 이들 시설을 “기본생활 영위에 필수적인 이용시설”로 보면서 “출입 자체를 통제하는 불이익을 주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식당이나 카페와 달리 상대적으로 감염 위험이 적은데도 일률적으로 출입을 제한해 백신 미접종자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취지이다.

같은 날 같은 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는 정반대 판단을 내렸다. 황장수 혁명21 당대표가 3000㎡ 이상 대규모 점포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별도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처분 효력을 긴급히 정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행정13부는 소형 점포나 전통시장에는 방역패스가 적용되지 않아 생필품 구매가 전면 차단되지 않는 점, 온라인으로 물품 구매가 가능한 점, 종이 증명서 제시 등 출입을 위한 대체 수단을 마련해 둔 점 등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행정4부보다 방역패스로 인한 기본권 제한 정도를 낮게 판단한 것이다.

■방역패스의 공익 따져보니

방역패스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공익에 대해서도 재판부마다 다른 판단을 내렸다. 행정4부는 대형마트 등의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하면서도 “방역패스 도입 자체의 공익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방역패스로 백신 미접종자의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제한하거나 백신 접종률을 간접적으로나마 높이면 코로나19 확진자 전체의 중증화율을 낮출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방역패스는 의료체계 붕괴를 막아 일반 중증환자의 생명권·건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했다.

반면 앞서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에 적용되는 방역패스에 대해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방역패스로 얻는 공익의 정도와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봤다. “코로나19 백신이 위중증률과 치명률을 현저히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면서도 “학습권 등을 직접 제한하는 중대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정당화될 정도로 객관적·합리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돌파감염이 나타나고 있는 점, 백신 미접종자 집단이 접종자 집단에 비해 코로나19 감염 확률이 약 2.3배 높아 현저한 차이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서울은 되고, 지방은 안 된다?

법원은 방역패스 정책의 집행 주체를 두고도 다르게 해석했다. 행정4부는 방역패스 조치를 실제로 시행하는 주체를 서울시로 보고 서울 소재 상점·마트·백화점에만 집행정지 결정을 내렸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 정부의 방역조치는 지자체의 공고를 거쳐야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방역당국의 지휘는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행정8부는 보건복지부 처분을 행정소송 대상으로 인정하면서 전국의 학원과 독서실 등에 대한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했다.

상점·마트·백화점의 경우 서울지역만 방역패스 효력 정지 결정이 내려져 지역간 형평성 문제도 불거졌다. 백화점과 마트에 적용하는 방역패스 계도기간은 17일부터 종료된다. 방역패스 조치를 어긴 이용자 및 시설운영자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그런데 정작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서울만 예외가 된 것이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혼선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방역패스 효력을 두고 법원이 심리하는 행정소송은 6건인데, 아직 남은 3건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지 예측하기 어렵다. 법원이 이미 판단한 3건의 집행정지 신청 건도 상급심이나 본안소송에서 결과가 바뀔 수 있다. 정부는 법원의 판결 취지와 방역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17일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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