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9일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공공을 넘어 민간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국회, 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겠다”며 지난해 1월 경기도에 도입한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대선 공약으로 확대했다. 이 후보는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이에 방송계 비정규직들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보상하겠다는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우선순위, 현실성 등에선 이견을 드러냈다. 한편 일부 야당에선 공정수당 지급이 비정규직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인 지난해 1월 경기도는 도와 산하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공정수당을 지급했다. 노동시작일이 얼마 되지 않은 노동자일수록 고용 불안정성이 큰 점을 감안해 노동기간이 짧을수록 보상지급률을 상향 적용해 공정수당을 설계했다. 프랑스 불안정고용 보상수당, 스페인 근로계약 종료수당, 호주 추가임금제도 등 외국 사례를 참고했는데 프랑스는 총 임금의 10%, 호주는 15~30%, 스페인은 5% 가량을 추가 임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민주당 선대위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민주당 선대위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 송호용 한국독립PD협회장은 모두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보상해주자’는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비정규직이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이중고를 떠안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 후보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이 문재인 행정부의 ‘비정규직 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차별화한 공약으로 보고 있다. 이 후보의 주장대로 비정규직 정책의 물꼬를 트는 현실성 있는 공약이란 시각도 있지만 근본적 문제를 짚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한별 지부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보다는 현실성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방송작가유니온이 2017활 노조활동을 시작했지만 현 정부 기간동안 방송계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작가들에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피부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도 법적 보호 받아야

다만 방송계 비정규직들은 직군별로 시급한 문제가 달랐다. 물론 임금상승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들도 법적 보호장치가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방송작가들의 경우 상시적으로 방송사의 지휘감독을 받는 작가들의 경우는 마땅히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지만 모두가 정규직을 원하거나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노동자든, 프리랜서든 현실적으로 각각의 작가 노동현실에 맞는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한두가지의 제도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한별 지부장은 “(노조 활동으로) 가장 큰 변화는 방송3사에 무기계약으로 일하는 작가가 곧 생긴다는 사실인데 그 과정이 험난하다”며 “KBS·MBC와 협의체를 통해 임금 관련 협상을 다시 시작하는데 (사업장별로) 기획료 관행이나 지역작가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와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인 '방송작가친구들'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서울노동청 규탄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방송작가들은 방송이 실제 나가지 않으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 프로그램 기획 기간에도 일을 하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이 관행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지역 방송사들의 경우 아예 임금테이블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올해 대선 등 선거를 앞두고 TV토론회와 관련한 업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작가들에게 임금을 주는데 20년째 동결되는 등의 문제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다뤄졌다. 

비정규직에게 수당으로 현재 받는 임금을 일부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초 임금이 제대로 책정돼 있지 않거나 임금협상력이 미약한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공정수당’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작가들의 임금과 노동이 제대로 상응하지 않는 가운데 수당을 책정하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예상했다. 김 지부장은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도 특수고용및프리랜서 자격, 노무미제공 확인서가 필요했는데 사실 많은 작가가 계약서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서류 준비하는데도 어려웠다”며 “작가들은 (정규직처럼) 일을 하면 바로 돈을 받지 못하는 등 불규칙해서 당장 일이 없고 소득이 없지만 과거에 소득이 잡힌 게 있어서 (지원금) 신청을 못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공정수당이 제도화되더라도 작가들의 노동과 연계돼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드라마스태프의 경우 임금상승 못지않게 다른 이슈들도 중요하다. 김기영 스태프지부장은 “드라마스태프의 경우 노동자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켜야 하는 문제가 시급하다”며 “(방송사·제작사들이) 아직 근로계약서를 쓰거나 4대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주 52시간 노동시간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지키겠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역시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을 경우 일한만큼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 있고, 기존 임금에 기반한 ‘공정수당’ 역시 허울뿐인 제도일 수 있다. 

김기영 지부장은 “편당 페이를 받는 독립PD, 작가의 경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수당’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직군별 차이도 언급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협상력 키워야

올해는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굵직한 행사들이 열린다. 방송사들은 해당 행사들을 특별편성하고 기존 프로그램들은 편성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편당 페이를 받는 비정규직들은 올해 수입이 급감할 예정이다. 김 지부장은 “특별편성으로 불방될 경우 비정규직 인원에 대한 보상책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스포츠 행사. 사진=pixabay
▲ 스포츠 행사. 사진=pixabay

 

그 외에도 지난해 스태프노조에서 KBS 등 드라마제작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는데 이 문제도 해결과제이고, 스태프노조에선 노동부에 방송계를 전담하는 근로감독관 배치도 정치권에서 해결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송 협회장은 이 후보가 대기업을 상대로 중소기업의 집단교섭을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28일 중소·벤처기업 공약 발표후 국회에서 법안 심의 중인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집단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에 대해 “하도급 기업들이 집단을 결성해 집단교섭해 이익찾는 건 허용해야 한다”며 “(담합이 모든 기업에) 일률 금지하니 약자를 약자 상태로 방지하고 경제생태계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협회장은 “방송사를 상대로 제작사들, 제작주체들이 교섭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관심이 간다”며 “만일 인정받는다면 방송계에 큰 파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방송사-제작사-제작사소속 비정규직의 수직구조에서 방송사의 교섭력이 압도적으로 큰 상황이다. 1인 독립PD들도 사업자등록 등을 통해 제작사로서 방송사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하도급법이 개정돼 적용되면 독립PD들의 협상력이 올라갈 수 있다. 

▲ 서울 여의도 KBS. 사진=정민경 기자
▲ 서울 여의도 KBS. 사진=정민경 기자

 

비정규직 고용불안,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경기도의 공정수당은 도와 산하 공공기관에 적용했지만 대선 공약으로 확대하면서 민간에는 어떻게 적용할지가 관건이다. 일단 이 후보는 국회와 기업 등에서 정책적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한별 지부장은 “비정규직에게 임금을 더 지급하도록 규제를 만들 수도 있고 (국가에서) 수당을 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송호용 독립PD협회장은 “국가에서 공적지원을 한다면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고 제작사를 운영하는 대표들 입장에서도 획기적이라고 볼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방송사들이 제작비 단가를 갈수록 저평가하고 경영이 어렵다며 인건비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강제하고 있는데 이는 방송산업 전반의 문제라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제1야당에서는 공정수당이 ‘비정규직군에 대한 기본소득’으로 규정했다. 윤기찬 국민의힘 선대본부 대변인은 10일 논평에서 “노동개혁 등 비정규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애써 외면하고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 해소방법으로 손쉬운 보상만을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이재명 후보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으로 고착될 수 있는 결과를 용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일자리정책은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을 위하여 취하는 정책인데,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고용안정에도 일자리창출에도 기여하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진보정당도 ‘공정수당’을 비판했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며 “돈 몇 푼 쥐여주면, 쓰다 버려도 공정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조속히 완료하고 민간대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파견법과 기간제법의 폐지, 근로기준법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명문화로 노동자를 가르고 차별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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