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조직적 ‘늑장 수사’, 피해자 회유 시간 벌어주며 은폐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보고 받은 양성평등센터

한 달 뒤 국방부 신고 접수

예방 지침 대응·보고 ‘먹통’

군 경찰·검찰도 부실 수사‘

‘없던 일 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서울 국방부 앞에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관계자 등이 10일 마련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이모 중사 추모 공간. 연합뉴스

‘없던 일 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서울 국방부 앞에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관계자 등이 10일 마련한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이모 중사 추모 공간. 연합뉴스

공군 제20전투비행단(20비)에서 성추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지 10일로 100일이 됐다. 군 당국의 합동조사로 피해자 보호는커녕 은폐·회유 압박 등 2차 가해 지속 정황이 확인됐다. 가해자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실한 초동 수사와 피해자 사망 이후 이뤄진 군 수뇌부 보고 등에서 20비 차원의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늑장 수사’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나아가 ‘조직적 은폐’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공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군본부는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지 사흘 만인 지난 3월5일 군사경찰단 중앙수사대 성폭력 전담 여성 수사관인 김모씨를 20비에 파견했다. 성폭력 전문가인 김 수사관은 이 중사에게 사건 발생부터 진행 과정, 보고 조치 등 관련 진술을 확보한 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군본부 양성평등센터는 한 달이 지난 4월6일에야 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에 피해를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사건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단순 집계 신고였다. ‘피해자가 부사관 이상 군인일 경우 최단 시간 내에 세부내용 보고’를 하도록 돼 있는 국방부의 성폭력 예방활동 지침과도 어긋났다. 이 중사 사건과 관련한 보고·대응체계는 ‘먹통’ 수준이었던 셈이다.

그사이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회유와 압박 같은 2차 가해가 이뤄졌다. 피해자는 도움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판단해 절망감에 빠지면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비 군사경찰은 3월5일 피해 신고 약 2주 만인 같은 달 17일에야 가해자 조사를 했다.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었지만, 가해자 조사는 한 차례만 실시됐다. 이후 4월7일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받은 20비 군검찰은 피해자 조사가 두 차례 지연됐다는 이유로 이 중사 사망까지 약 55일 동안 가해자 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받고도 즉각 집행하지 않았다.

조사 대비해 관사에 있어라’
부대장이 이 중사에게 권유
부대원 자체 해결 선택한 듯

이 중사가 2개월간 청원휴가 중 50일 정도 관사에 남아 있었던 것도 석연치 않다. 유족 측에 따르면 이는 부대장이 이 중사에게 성폭력 상담 등 군사경찰 조사에 대비해 관사에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회유·협박에 나선 가해자와 부서 상관들의 접근을 쉽게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이 중사가 관사에 머무르는 동안 합의를 강요하는 회유와 협박 등 2차 가해가 상당했다.

20비 사정에 밝은 군 관계자는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조직적으로 지연·늑장 수사를 했을 개연성을 제기했다. 다른 비행단과 달리 도심과 멀리 떨어진 20비에서는 악성 군기사고가 잦아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이를 발본색원하기는커녕 부대원 자체에서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는 주장이다. 군사경찰과 군검찰이 부실·늑장 수사로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불안한 쪽으로 몰아가면서 오히려 가해자와 합의하거나 조직문화에 순응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20비에서는 이 중사 외에도 2018년 11월 병사, 2019년 2월 하사, 2021년 1월 병사 등 최근 3년간 부대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가 3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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