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전문가 인터뷰

①예방의학 전문가 “노동환경 바꿔 사회 전체 감염수준 낮추는 게 장기적 해법”

이혜인 기자

기모란 예방의학회 코로나19대책위원장

기모란 교수가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앞으로 재정비해 나가야 할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기모란 교수가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앞으로 재정비해 나가야 할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1월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후 70여일이 지났다. 최악의 경우 코로나19가 1~2년 동안 장기 유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은 신천지발 대규모 확산의 불씨를 끄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해외에서 감염자가 유입되고 산발적인 집단감염도 계속되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향신문은 예방의학·보건학 전문가들을 만나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지 들어봤다.

신천지 대구교회 사태로 확진자가 하루에 수백명씩 폭증하던 시기를 지나, 국내 코로나19 유행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전체 확진자 수는 크게 줄었지만 해외유입 환자, 요양원·병원·콜센터 집단감염 등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 안팎을 오가며 감염 확산이 계속되고 있다. 고강도의 물리적 거리 두기로 확진자 수를 확 떨어뜨린 후 개학을 하려던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져 개학이 한 차례 더 연기됐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예방의학 전문)는 “지금은 개학을 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라며 “지속적인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사회구조와 노동환경을 다 바꿔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기 교수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사스·메르스와 달라 집단면역으로 해결 안돼”

- 코로나19 유행 초기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했다. 이제와서 보니 그 어느 감염병보다 관리가 어려운 질병 같다.

“처음에는 한국뿐 아니라 모두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해서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사스·메르스가 증상 발현부터 감염력을 가지니까 코로나19도 증상 발현 후부터 격리했다. 병증이 어느 정도 진행돼 폐렴에 걸린 사람만 치료하자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겪어보니 코로나19는 정말 만만한 병이 아니다. 관리가 굉장히 어려운, 예상을 뛰어넘는 병이다. 대부분 신종 감염병은 치명률이 높은데, 치명률이 높을수록 전파는 잘 안된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치명률이 낮은 대신 증상이 없을 때도 감염력이 매우 높다.”

-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보니, 결국에는 인구 절반 이상이 걸려서 집단면역을 획득해야 종식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걸려도 계속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론적으로 전 국민이 무작위 접촉을 해서 인구 50%에게 면역이 생기면, R(재생산지수)이 1 이하로 떨어지면서 유행이 사그라들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독감만 봐도 전 국민의 50% 정도가 매년 예방접종을 하는데도 R이 2 정도라서 주기적으로 유행한다. 게다가 예방접종을 맞은 사람들은 맞은 사람끼리 만나고, 안 맞은 사람들은 안 맞은 사람끼리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걸릴 사람은 계속 걸린다. 무엇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걸리게 그냥 두는 것은 위험하다. 코로나19는 연령별 치명률 차이가 너무 크다. 40대 미만은 치명률이 매우 낮은데, 고령일수록 높아진다. 3000만명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치명률이 1%라도 30만명이 죽는다는 거다. 그래서 감염자가 아직 나오지 않은 요양원이나 정신병원까지 선제적으로 진단검사를 해서 찾아내고 치료하는 것이다.”

■“입국제한 초기에 했어도 확산은 막을 수 없었을 것”

입국제한 요구는 의학적 입장
하지만 방역은 의학과 달라
봉쇄보다는 연대로 극복해야

- 정부 방역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중국 입국제한을 너무 늦게 해서 확진자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것이 1월20일이고,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한 것이 1월23일이다. 그리고 국내 31번째 확진자가 나온 날은 2월18일이다. 31번째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 신천지 교인 중 1000여명이 유증상자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 가장 빨리 증상이 시작됐다고 한 사람이 1월22일에 증상을 느꼈다고 했다. 즉,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하기 전부터 이미 국내에서 하나둘 전파가 시작되고 있던 것이다. 정부가 중국 전역을 입국제한 했더라도 신천지 중심의 대구·경북 전파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부글부글 끓던 것이 나중에 터진 것이라 봐야 한다.”

-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지금이라도 입국제한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게 막으면, 해외에 유학 간 사람이나 돈 벌러 나가 있는 사람들이 다 못 들어오게 된다. 그럼 또 왜 못 들어오게 하느냐고 난리가 날 거다. 입국제한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의학적 원칙에서 감염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방역과 의학은 다르다. 우리가 입국금지를 이 수준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첫째 자국민 보호, 둘째 경제 시스템 유지다. 그런데 의학적 원칙만 따져서 마치 병원 문 하나 닫듯이 국가 문을 닫아버리라고 하는 것은 안된다. 결국에는 방역이 아닌 ‘프레임 싸움’이라고 본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방역을 하려면 봉쇄가 아니라 연대해야 한다고 했다. 각 국가가 협조해서 내보내는 쪽에서 발열감시하고, 들여오는 쪽에서 증상자를 감시해야 한다.”

■한국이 잘한 점은 검사 빨리 한 것, 앞으로는 평가체계 만들어야

각국 대응 성적 30점 안돼
‘50점’ 한국이 칭찬받는 것

- 신천지발 확산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는 한국이 초기 대응을 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우리도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30점도 안될 만큼 너무 못해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했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외국이 방역에 실패한 원인은 이 질병의 특성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 맘대로 재단한 것이다. 특히 처음에 이 질환을 얕본 중국이 사람 간 전파가 없다고 밝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뒀던 것은 매우 큰 실수였다고 본다. 나중에 중국이 무증상 감염도 가능하다고 뒤늦게 밝혔지만, 그때는 다른 나라들이 안 믿었다. 만약 미국에서 처음 유행이 시작됐다면 각국 대응이 달랐을 수도 있다. 반면 한국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방역당국이 할 수 있는 게 검사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검사해서 빨리 감염자를 찾아냈다. 또 시민들은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물리적 거리 두기를 지키려 노력했다.”

- 확진자 수가 쉽사리 줄지 않으면서 방역은 물론 의료인력에도 과부하가 걸려 있는 상태 같다. 

“의료진 피로도를 낮추려면 병상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경증환자를 위한 생활치료센터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경증환자 다수가 음압시설 있는 병실에 입원해 있다. 생활치료센터로 내보내려고 해도 환자들이 불안감에 못 나가겠다고 하면 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음압시설은 의료진이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로 치료하고 관리해야 해서 피로도가 클 수밖에 없다.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서 중증환자만 남기고 나머지는 내보내야 한다.”

중증환자만 남기고 보내야
과부하 줄이고 장기화 버텨

- 코로나19 사태로 공공의료체계 부족 문제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지금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의 이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공중보건의 시스템이 있다. 전역 앞둔 공중보건의 휴가 다 못 쓰게 하고, 일찍 소집해서 1500명 정도의 의료인력을 확보했다. 공공의료는 코로나19 사태 끝나면 정비하겠다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의료인력 늘리고 시설 확충해야 한다. 평가체계 마련도 시급하다.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방역정책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 경제정책을 평가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있듯이, 보건 쪽에도 건강정책평가연구원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중간에라도 현재 하고 있는 정책들이 뭐가 좋고 나쁜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 결국 개학이 한 차례 더 연기됐다. 언제쯤 개학할 수 있을까.

“지금은 개학할 상황이 전혀 아니다. 감염 확산세 모델링을 해보면 해외에서 유입되는 환자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해외에서 유입되는 분들로 인한 추가 감염자는 별로 없다. 자가격리 수칙을 어긴 제주여행객 같은 사례도 있지만, 검역단계에서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입국자의 재생산지수(R)는 0.1도 안된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정신병원이나 요양병원, 콜센터 같은 곳에서 100명 이상 무더기 집단감염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학교가 문을 열면 학생들로 인해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고, 고령자에게 전파될 우려가 있다. 개학 연기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아이들이 가장 전파를 많이 일으킬 수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 코로나19 장기전을 대비해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지금은 개학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 전체의 감염수준을 낮추는 것은 다른 차원의 장기적인 문제다. 우선 노동환경을 다 바꿔야 한다. 콜센터같이 밀집된 노동환경이 감염에 취약하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그러면 재택근무를 시킬 것인지, 시설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성과평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논의해서 정해야 한다. 또 PC방이나 헬스장, 교회에 대한 관리기준도 만들어야 한다. 한 시설에 여러 명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감염위험이 높은 요양병원, 정신병원은 장기적으로 재가 돌봄이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구조적으로 바꾸는 건 결국 돈이 드는 문제다.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기모란 교수는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교수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감염역학·예방의학 분야 전문가다. 국내에서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민간위원회에서 중책을 맡아 정부 방역정책에 자문을 해왔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국내 유행 당시 대한예방의학회 메르스위원장이었고, 현재는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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