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리 칼럼 사태 뒤엔 ‘일그러진 선거법’ 있다

조형국·심진용 기자

언론중재위 “선거법 위반 판단”에 표현의 자유 문제 수면 위로

낙천·낙선운동 때처럼 유권자 정치참여 범위 놓고 여전히 논란

선관위만 쳐다보게 되는 모호한 선거법…‘개정 논의’에 불 댕겨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자료사진.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경향신문 칼럼(‘민주당만 빼고’)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고발 논란이 공직선거법 개정 논의로 옮겨붙고 있다.

지나치게 엄격한 선거운동 범위, 기득권 정치인에게 유리한 제도, 좁은 선거운동 기간을 규정한 현행 선거법이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나 정치활동을 옥죄어왔다는 비판이다. 모호한 규정 탓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권해석에만 이목이 쏠리면서 유권자들은 ‘침묵’과 ‘처벌’의 갈림길에서 사실상 침묵을 강요당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14일 자당에 비판적 칼럼을 쓴 임 교수와 경향신문에 대한 검찰 고발을 취하했다. 총선을 약 50일 앞두고 중도층뿐 아니라 지지층조차 비판하자 결국 취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같은 날 비공개회의에서 “학자가 언론에 쓴 칼럼을 두고 정당이 이렇게 (검찰 고발)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라고 당 공보라인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해당 칼럼을 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해 ‘권고’ 결정을 내리면서다. 선거법은 선거운동 기간 외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 교수 칼럼은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했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지층 일각에선 선거기사심의위 결정을 근거로 표현의 자유와 선거법 위반은 별개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선거법 위반과 표현의 자유조차 구분 못하는 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건 사치”라고 썼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선관위도 사건 조사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선거법의 불합리성을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유권자의 정치참여 의지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해 전면적인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헌법 21조가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가 현행 선거법의 선거운동 규제보다 상위 규범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16일 “주권자의 정치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해선 안될 것’ 외 나머지는 자유롭게 푸는 게 원칙”이라며 “독재정권하 국민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정비된 규제들이 고무줄 잣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선거법 개정 촉구 토론회 발표문에서 “선거운동인 행위와 아닌 행위를 구분하는 선거법 58조, 기간을 정해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59조, 사전선거운동을 범죄로 규정한 254조, 선거일 180일 전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90조, 93조 등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득권에만 유리하게 적용돼온 선거법의 모순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민주당·한국당 대표들이 ‘○○당 찍어달라’, ‘◇◇당 찍지 말라’고 말하는 게 문제가 되나. 선거법 적용이 형평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현행 선거법은 엘리트 집단에는 관용적으로, 유권자 집단에는 억압적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임 교수 글이 선거법 위반이면 이 기사들도 다 불법”이라며 여야 정치권 발언이 소개된 기사를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선거법이 유권자의 정치참여 확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은 선거 때마다 논란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낙천·낙선 운동 지지 표명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이 대표적이다. 논쟁은 국회 입법 시도로도 이어졌다. 2016~2017년 민주당 박주민·김태년 의원 등은 당선·낙선을 위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만을 선거운동으로 규정한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선거운동 정의가 추상적·포괄적이라 일반적인 정치활동이 제한받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조성대 교수는 “임 교수 의견에 100% 동의하지 않지만 그 자유를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라며 “선거법이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가로막는가를 원점에서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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