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활성” “빈곤 장사”…기생충 관광상품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탁지영 기자
영화 <기생충>을 촬영한 서울의 공간들. (위 사진부터) 마포구 돼지쌀슈퍼, 기택 가족이 상자 접는 아르바이트를 한 동작구 스카이피자.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영화 <기생충>을 촬영한 서울의 공간들. (위 사진부터) 마포구 돼지쌀슈퍼, 기택 가족이 상자 접는 아르바이트를 한 동작구 스카이피자.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촬영지 보유한 서울시·고양시 등 지자체들 앞다퉈 관광코스 개발 계획
“영화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뿐” “누군가에겐 사는 공간” 반응 엇갈려
일각선 “완성도 높은 작품 나오게 영화 제작 풍토 개선이 우선” 지적도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돼지쌀슈퍼’ 앞에 마스크를 쓴 외국인 관광객 2명이 멈춰 사진을 찍었다. 돼지쌀슈퍼는 영화 <기생충>에서 ‘우리슈퍼’로 등장한다. 우리슈퍼 앞에서 기우(최우식)는 친구 민혁(박서준)으로부터 고액 과외를 제안받는다. 40여년 동안 이 자리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한 이정식씨(77)는 “전날에는 버스 한 대에서 사람들이 내려 사진을 찍고 갔다”고 말했다.

슈퍼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높은 계단이 보인다. 기택(송강호)이 비를 맞으며 박 사장 저택에서 반지하 집으로 돌아갈 때 이 계단을 내려간다. 슈퍼를 촬영하던 관광객들은 계단에 올라가서도 사진을 찍었다.

스카이피자에 걸린 봉준호 감독과 찍은 기념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스카이피자에 걸린 봉준호 감독과 찍은 기념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르면서 영화 속 촬영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촬영지를 보유한 지자체들은 앞다퉈 ‘기생충 관광코스’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가난의 상품화’라는 비판과 관광상품 개발을 환영하는 의견이 엇갈린다.

경기 고양시는 촬영장으로 사용된 ‘고양 아쿠아 특수촬영 스튜디오’ 일대에 2026년까지 영상문화단지를 조성한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기택네 반지하집 세트가 이곳에 만들어졌다. 이재준 고양시장은 “<기생충> 촬영 스튜디오 세트 복원 등을 추진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 도시를 만들어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부터 마포구 ‘돼지쌀슈퍼’와 ‘동네 계단’, 종로구 ‘자하문 터널 계단’, 동작구 ‘스카이피자’ 등 주요 촬영지를 탐방코스로 묶어 소개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서울관광재단과 함께 촬영지를 배경으로 ‘영화 전문가와 함께하는 팸투어’를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기택 가족이 도망치던 자하문 터널 계단.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기택 가족이 도망치던 자하문 터널 계단.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반응은 엇갈린다. 참여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빈곤사회연대 등 7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2020 총선주거권연대’는 13일 출범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을 두고 “ ‘주거 불평등’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상징한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반지하·고시원·쪽방·옥탑방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는 관심을 갖지 않던 정치권이 영화에 나오는 반지하집 세트장을 복원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오현주 정의당 대변인도 “<기생충>의 유명세는 ‘불평등’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전 세계적 공감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촬영지를 관광코스로 개발한다는 건 가난의 풍경을 상품화하고 전시거리로 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영화에 나오는 반지하는 가난의 ‘유물’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누군가의 가난과 절박한 사정이 누군가에게는 관광이 된다니 끔찍하다” 같은 의견이 쏟아졌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시각화한 공간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건 ‘빈곤 포르노’라는 것이다.

유명 영화의 촬영 장소를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건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도 있다. 직장인 이모씨(31)는 “가난을 판다기보다 유명 영화라는 ‘콘텐츠’를 판매한다고 본다”며 “관광 수요가 맞으면 상품화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NS에서는 “유명 촬영지를 관광지로 만드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단지 <기생충>의 촬영지가 반지하 달동네일 뿐” “외국 팬들도 많이 찾으니 관광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 같은 반응도 나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버투어리즘 등 지역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관광코스로 만들면 생기는 문제는 상당히 많다”며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코스로 만드는 건 과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광상품화보다는 <기생충>처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영화 제작 풍토 등을 개선하는 작업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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